칼럼 사직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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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8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를 따라 서울 필운동에 살던 삼촌댁에 들른 일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왜 나를 다리고 서울에 왔었는지는 모른다. 삼촌댁에 여러 날 머물렀던 것 같은데 그때 있었던 일 중에 꼭 한 가지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가 1930년대 초반인데, 필운동 가까이 있는 사직공원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던 때였다. 축대를 쌓기 위해 삐뚤삐뚤한 돌들이 놓여있는 사이로 어린 내가 뛰어 다니다가 넘어지면서 내 이마 왼쪽이 돌 모서리에 부딪쳐 머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그 가까이 있던 어머니가 몹시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젊은이가 달려들어 자기가 입고 있던 흰 와이셔츠를 찢어 내 머리를 싸매고 나를 안고 병원을 찾아 달려갔다. 그 병원이 어디였는지 생각나지도 않고, 의사의 얼굴도, 그 청년의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상처는 잘 아물어서 나는 지금도 그 흔적을 이마에 간직하고 살고 있다.
이 세상에는 남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보고 다들 도망을 간다고 잘못 알고 있지만, 이 세상에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의로운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의 어머니는 나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그 의로운 청년에 대하여 한 평생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를 만나지도 못했고,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한 것을 늘 애석하게 여기셨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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