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문고와 격쟁도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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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원억미신자(寃抑未伸者 :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풀어 해결하지 못한 자)에게 소원(訴寃 : 원통함을 소송함.)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대궐에 북을 달아 소원을 알리게 하던 제도가 신문고이다.
조선 개국 이래의 혼란과 재상(宰相)·훈신(勳臣)이 중심이 된 정치를 극복하고 국가의 안정과 국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를 구현하려는 태종이 초기(1401년 7월에 만든 제도이다.
원래 신문고는 형(刑)이 자기의 신상에 미칠 경우, 부자간 또는 형제간의 분간(分揀), 적처와 첩 간의 분간, 양인과 천인간의 분간 등 네 가지 일에 관해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신문고와 멀리 떨어진 곳의 백성은 신문고를 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격쟁(擊錚)이다. 격쟁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한 사람이 궁궐에 난입하거나 국왕이 거동하는 때를 포착하여 징·꽹과리[錚]·북[鼓]등을 쳐서 이목을 집중시킨 다음 자신의 사연을 국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행위로 그 범위는 자손이 조상을 위해, 처가 남편을 위해, 동생이 형을 위해, 종이 주인을 위해 하는 네 가지였다.
신문고나 격쟁은 임금이 백성들의 말을 듣는 제도로 백성에 대한 임금의 귀를 열고 눈으로 확인하여 다스림을 올바르게 하자는 것이다.
총명(聰明)의 반대는 아둔이다
총명하다는 것은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이다. ‘총명하다’의 ‘총(聰)’은 ‘귀 밝을 총’이다. ‘명(明)’은 ‘눈 밝을 명’이다. 곧 남의 얘기를 잘 들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올바르게 보는 사람이 총명하다. 총명의 반대는 아둔인데 아둔은 슬기롭지 못하고 머리가 둔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국민의 말을 듣지 않고 그 어려움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고집으로 가는 지도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이 정권이 귀를 열고 눈으로 보는 것은 북한정권과 우리를 무시하는 중국과 노조뿐이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북한에 각 당 대표들도 같이 가자고 했다. 알현하는데 동참했으면 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여당의 대표는 20년 정권을 말하고 있지만 백성의 고통을 모르고 백성을 무시하는 정권은 2년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야당이라는 한국당도 국민의 목소리에 대변(代辨)을 못하고 지리멸멸하고 있다. 이 나라 국민들은 고통과 괴로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나 한가위는 다가오는데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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