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상과 모략의 가시밭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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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 원루를 비 삼아 띄워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본들 어떠리
(이항복)
백사 이항복(1556-1618)은 선조 때 우의정의 자리에까지 오른 일이 있지만 본디 당쟁에 초연코자 힘쓰는 가운데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는 광해군의 폐모(廢母)를 반대하다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가면서 이 시조를 한 수 읊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귀양 갔던 북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철령은 강원도 회양에 있는 무척 높은 고개이고, 고신(孤臣)은 외로운 신하, 원루(寃淚)는 원한의 눈물, 구중심처는 임금님 계신 궁성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되는 충신의 피눈물 나는 하소연으로 들립니다. 뒤에 이 시조를 읽고 광해군도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백사는 해학에 능하여 그보다 7년 선배인 백호 임제를 방불케 하는 문재를 지닌 선비였습니다. 백호는 기생 황진이의 무덤을 찾았다지요. 그 무덤가에 앉아 그 기생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임제는 “잔 잡고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서러하노라”고 읊었으니 과연 파격적이라 여겨집니다.
백호 임제나 백사 이항복 같은 유능한 선비들이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조선조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요 모양 요 꼴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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