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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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성(詩聖)으로 알려진 당(唐)나라의 두보(杜甫 - 712~770)가 전란 중에 봄을 맞아 이렇게 읊었습니다.
<봄이 왔건만 (春望) >
나라는 망하여도 강산은 여전하네
성내에 봄이 와서 초목은 무성한데
시국을 탓할 건가 꽃을 봐도 눈물 나
이별이 한스러워 새 노래에도 가슴 덜컥
봉홧불 지난 석 달 연이어 올라가니
집안 소식 알려주면 천만금이 아까우랴
흰 머리 긁다보니 더욱 짧아졌어라
앞으로는 비녀 꽂을 자리도 없어질 듯
두보는 한 평생 가난하고 고독한 시인이었습니다. 안록산(安祿山)의 난(亂) 으로 가족은 뿔뿔이 헤어지고 소식은 막연한데 장안에 봄은 와서 초목은 무성하지만 봄이 봄 같지가 않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하니 꽃을 보고도 눈물이 쏟아지고 식구들과의 이별이 한스러워 새가 노래해도 이를 즐기질 못하고 가슴이 철석합니다.
관운(官運)이 없는 탓에 벼슬도 오래 못 하고 유랑의 신세가 되었는데 ‘안록산의 난’은 40대의 두보에게는 치명적이어서 허연 머리를 긁고 또 긁으니 자꾸만 빠져서 관직을 받아서 관모를 쓰려고 비녀를 꽂으려 해도 꽂을 자리도 없겠다고 스스로 신세를 한탄하는 두보가 처량해 보입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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