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비가 과연 미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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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는 시골의 어떤 부자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해 수해가 심해서 수재의연금을 거두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그 동네에서 소문난 부잣집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그 집 앞에 갔더니 그 부자 영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머슴을 호되게 야단치고 있더랍니다. 무엇 때문에 저렇게 야단을 치는가 들어봤더니 그 머슴이 아직도 쓸 수 있는 새끼 오라기를 함부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의연금을 부탁하려고 그 집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그런 광경을 보고 멈칫하였습니다. 새끼 오라기 하나 때문에 저렇게 화를 내는 저 노인이 의연금을 내도록 설득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집에는 들어갈 필요조차 없겠다는 결론이 압도적이었으나 그 중 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인데 이왕 왔으니 그 부자에게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 보자고 하여 삼남에 수해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그 노인에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구두쇠 영감이 선뜻 30원을 내겠다고 약속을 하더랍니다.
단 돈 1원도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이던 이 인색한 시골노인이 30원을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끼 오라기도 아끼는 이 노인이 결코 인색한 사람은 아니고 다만 ‘근검절약’하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큰 공장들이 대량생산을 하게 마련이니까 생산된 물건을 많이 써줘야 공장이 잘 굴러갈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낭비’가 미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노자가 가르친 세 가지 보배로운 교훈 중 두 번째가 ‘근검절약’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제 나를 찾아왔던 경제인 한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에게 “취임 30일 이내에, 100만의 공무원과 50만의 국영기업체 종업원들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정부의 낭비를 맹렬하게 비판했더니 대통령 당선자는 웃기만 하고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더랍니다. 반만 가지고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으로 줄이는 것이 국민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들‧딸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불필요한 입시경쟁 때문에 고등학교 3년의 과외비가 1억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각자가 소위 ‘수능고사’를 보기 위해 몇 만원을 납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이 나라의 대학입시가 경쟁을 넘어 ‘지옥’에 다다랐다고 느꼈습니다. 그 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모도 가엾고 고등학교 3년의 ‘연옥’을 거쳐야 하는 아이들은 더 불쌍하게 어겨집니다. 학부모들의 ‘허영심 경쟁’에 아이들은 ‘희생양’이 되고, 그 낭비 때문에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근검절약’이라는 상식적 덕목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낭비’가 미덕일 수는 없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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