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거는 과연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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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속담에 “Past seems best”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간 일들이 다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좋게 또는 아름답게 회상되는 것은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의 현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팔‧다리에 힘이 빠지기 전에는 노년이 예상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허리가 굽고 걸음걸이가 느린 노인들을 보면서 “좀 더 허리를 펴고 빨랑빨랑 걸어가시지!”라고 생각을 할 뿐, 저 늙은이들이 나이가 먹어서 저렇게 되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도 언젠가는 저 꼴이 되겠지”라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그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이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겁니다.
일찍이 시인 모윤숙이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면서 ‘청춘의 가시관’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청춘의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고 ‘가시관’이라고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본의 어느 작가는 젊은 날의 고뇌를 두 마디로 요약했는데 그 하나는 ‘자부심’(호꼬리)리고 또 하나는 ‘욕망’(요꾸보오)라고 했습니다.
젊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이 특색입니다. 노욕(老慾)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늙은이의 욕망은 국한돼 있습니다. 성욕은 다 잠들고 식욕이 있긴 하지만 많이 먹지는 못합니다. 정신 나간 노인이 아니고는 폭음(暴飮) 폭식(暴食)하지 않습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시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일을 많이 해야 노인들이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두고 불평스럽게 투덜거리면 사람구실 못합니다.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이 젊은 아들‧딸의 책임인 것처럼 노인들을 먹이고 보호하고 되도록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어느 사회에서나 젊은이들의 본분이고 의무입니다.
모든 노인들에게서 50년의 세월을 제거하면 모두가 20대 30대의 팔팔한 젊은이가 됩니다. “내 청춘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착각하고 살다가는 50년 뒤에 큰 낭패를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50년 뒤를 내다보는 젊은이가 가장 지혜로운 젊은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일 나의 하나님이 “반백년의 세월을 되돌려 너를 다시 젊게 만들어 주랴?”라고 말씀하시면 나는 하나님을 향해, “그렇게 하지 마셔요. 저는 다시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이렇게 늙은 대로 두셨다가 조용히 불러가 주세요”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나의 젊은 날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습니다. 나도 시인 모윤숙과 함께 ‘청춘의 가시관’을 벗은 지 오랩니다. “하나님, 나에게는 오늘이 어제보다 나아 보입니다. 그것이 주께서 주시는 ‘은사’라고 믿고 조용히 살다 조용히 가겠습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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