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생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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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이가 90이 되기까지 사람으로 살아왔으니 인생을 두고 몇 마디 할 수 있는 자격은 이미 취득했다고 자부합니다. 젊어서는 대충 알고도 큰소리치며 당당했는데 오늘 돌이켜 보면 부끄럽습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사회의 거울은 사람의 얼굴을 희미하게 비쳐주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지금은 거울 속으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오”라고 했을 겁니다.
오늘 확실하게 한 마디 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은 “인생은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인생고해’(人生苦海)라는 가르침이 나에게 큰 교훈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또한 깨달았습니다. 나도 아주 고약한 인간들을 만나서 매우 어려운 고비를 겪은 적도 있습니다. 생기기도 잘 생기고 옷도 잘 입고 좋은 대학도 나오고 말도 잘 하는 법조인 정치인으로 한 때는 명성이 자자하던 인물인데 알고 보니 표리부동인 이중인격자요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이요 도둑놈이었습니다.
내가 그 놈의 이름 석 자를 여기 적으면 나도 즉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것입니다. 내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장본인은 이것이 딴 사람에 대한 악평이지 자기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악인은 다섯도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망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오늘을 맞이하였습니다. 내가 이긴 겁니다. 어떻게 이길 수가 있었는가? 내가 만난 사람은 백만 명도 더 될 텐데 다섯 명의 악한들이 똘똘 뭉쳐도 나를 내동댕이칠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문인 John Ruskin(1819~1900)은 젊었을 때 <현대화가론> (Modern Painters)을 쓴 예술평론가이기도 한데 더러운 것만 보지 말고 아름다운 것을 보라고 가르쳤습니다. 중학생 때 읽은 교과서에 그의 글이 한편 실려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시궁창에 물이 흐르는데 왜 그 바닥만 들여다보는가? 그 물 위에 흘러가는 구름을 봐야지!” 그런 걸 가르쳐준 이는 정말 훌륭한 스승입니다.
강도 아름답고 산도 아름답습니다. 숲도 아름답고 바다도 아름답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아름답고 장미꽃 한 송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천지만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입니다. 여자도 아름답고 남자도 아름답습니다. 나도 시궁창에 흐르는 물 위로 함께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을 즐기는 삶의 비결을 터득하였다고 자부합니다.
나도 그 구름과 함께 이렇게 흘러서 갑니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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