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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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의 을사보호조약이 일본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체결된 것이지만 어쨌건 그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외교권과 군사권을 박탈당하였으니 그로부터 해방을 맞기까지 장장 40년 이 겨레는 고약한 일본의 침략자들에게 시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의 해방이 그토록 감격스러웠을 것입니다. 3천만 동포가 모두 덩실덩실 춤을 출 만큼 온 국민이 그 기쁨을 함께 했으니! 그 날을 오늘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날에는 정권을 잡겠다는 사람도, 큰돈을 벌겠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해방된 조국의 문지기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나는 평남 평원군 영유라는 곳에서 국민 학교 교사로 있다가 평양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소련군의 행진도 보았고 김일성의 등장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적위대가 조직되고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감행되었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소련군의 횡포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또 내가 가진 종교에 대한 탄압도 매우 노골적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공산주의는 잘못된 이념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탈북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월남하여 대학에 다니면서도 공부는 안 하고 동맹휴학만 획책하는 사이비 학생들과 맞붙어 싸움도 많이 했습니다. 드디어 이승만이 영도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만방에 선포되던 날 나도 학생들을 대표하여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그릇된 이념들을 물리치고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새 나라를 세운 겁니다. 이승만이 없으면 대한민국이 아예 출발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2년도 채 안 됐던 1950년 6월 25일, 북의 인민군이 새벽에 남침을 감행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저 놈들은 전쟁을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있다가 탱크를 몰고 38선을 넘어 온 것이고,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징병들은 휴일인 일요일을 맞이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때 이승만은 부르짖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United stand, divided fall) 우리는 그 침략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지켰습니다.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되찾은 나라를 다시 잃을 뻔 하였습니다. 이승만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3.15 부정선거는 ‘옥에 티’라 하겠지만 이승만은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만만세!”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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