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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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노인들이 흔히 하던 말 한마디가 생각난다. “늙으면 죽어야지.” 그 한마디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고, 진담일 뿐 아니라 지극히 사리에 들어맞는 한마디이다. 그런 말을 하는 노인이 있어서가 아니라 노인은 당연히 다 죽어야 마땅하다.
100세를 넘어 120세까지 사는 노인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나이가 되도록 건강하게 오래 사는 노인은 만나보기 어렵다. 기원 2000년의 새날이 밝아 오던 때, 나는 혼자 앉아서 50년 전에, 다시 말하자면 1950년 6.25 사변이 터지던 그 해에 살아있던 유명한 인사들이 몇 명이나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가 한번 곰곰이 따져 본 적이 있었다. 50년 세월이 흐른 뒤,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하던 이들은 대부분 다 떠나고 대체로 덜 유명하던 사람들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1세기가 시작 되던 그 무렵에 절실하게 느낀 그 생각이 오늘도 나의 삶에 몇 가지 지침을 마련해 주고 있다.
젊었던 시절처럼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하지 말고, 할 만한 일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탓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 성실하게 살면 된다는 그 깨달음이 석양에 홀로 서있는 이 노인에게 힘겨워도 기쁨이 된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던지 간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기쁘게 맞아 그들에게 매우 작은 사랑을 베풀 수만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하루인가, 노인의 하루도 여전히 아름다운 하루가 될 수 있다.
김동길 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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