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후의 승리는 누구에게?
페이지 정보
본문
김동길교수
뉘 집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이 태어난 본인의 책임일 수는 없습니다. 부잣집에 태어날 수도 있고 가난한 집에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이라고 불리는 애들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보통 사람’으로 태어나게 마련인데 그 사실을 가지고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넓고 넓은 인생의 경기장에서, 앞설 수도 있고 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좀처럼 인생의 승패를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잘 나가다가 곤두박질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자메이카의 볼트보다 더 빨리 달리는 선수가 조만간 나타날 것입니다. 미국의 타이슨보다 더 무서운 주먹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입니다.
세상의 경쟁이 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소리치기 어렵습니다. ‘건강 백세’를 떠드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는데 100세에도 여전히 건강한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목숨이 붙어있을 뿐인 불쌍한 노인들입니다.
한 인간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그가 죽고 그의 관 뚜껑에 못을 박은 뒤에야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말입니다. 100년 또는 200년 지나서 평가가 완전히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1,000년 또는 2,000년은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000년 전에,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일러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담대하라”고 하신 그 어른이,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한 마디 하시고 이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분이 최후의 승리자라고 나는 믿습니다.
누구나가 거쳐야 하는 죽음의 관문 앞에서 태연한 사람만이 승자이고 나머지는 다 패자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는 소크라테스가 석가가 공자가 차지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따르면서, 나도 담대하게 살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최후의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이전글정치인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 14.12.04
- 다음글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 14.11.2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