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경산의 역사와 압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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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수(대구미래대학교 교수)
Ⅰ. 경산의 지명유래와 역사
1.경산(慶山)지명 유래
<삼한시대>압독국(押督國)ㆍ압량국(押梁國)→<고대>(선덕, 진덕, 무열왕)압독주(押督州)ㆍ압량주(押梁州)/(경덕왕)장산군(獐山郡)→<고려>(태조)장산현(章山縣)/(충선왕1,1309)경산군(慶山郡)ㆍ옥산(玉山)
*『시경(詩經)』에 나오는 「농장지경(弄璋之慶)」: 아들을 낳은 경사. (농장: 사내아이의 장난감 구슬/ 아들을 낳음)
2. 경산의 역사
1) 선사시대
*『경산시문화유적분포지도―경산시―』(경산시ㆍ대구대학교박물관, 2006)에 의한 경산의 선사유적현황(삼국시대 이전)을 살펴보면(1991년과 1995년 대구지역에 편입된 지역(고산면, 안심읍)을 포함해서 모두 88개소가 확인됨.
* 신석기시대 1개소(안심 대림동유적 신석기 후기 B.C 2천년~B.C 1천년 추정),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와 주거지유적(장방형ㆍ방형ㆍ원형) 24개소(탄소연대 기원전 10~7세기로 추정), 지석묘유적 52개소(기원전 5세기~기원전 2세기 추정), 석관묘유적 2개소, 옹관묘유적 1개소, 입석 8개소 등.
2) 삼한시대(초기 철기시대)
* 변진의 한 나라였던 압량국〔압독국〕이 위치한 곳으로 추정되는 임당유적(행정구역상 경산시 임당동ㆍ조영동, 압량면 부적리에 걸쳐 분포하는 대단위 고분군을 임당동고분군, 경산지역을 대표하는 중심 고분군으로 임당유적으로 부름)
* 초기철기시대부터 목관묘(木棺墓), 목곽묘(木槨墓),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 암광목곽묘(岩壙木槨墓), 석실묘(石室墓) 등 다양한 유형의 분묘가 시기를 달리하면서 각각 조성됨.
* 발굴된 고분의 성격으로 보아 임당유적에 처음 분묘를 축조하기 시작한 집단을 세형동검을 표지로 한 초기철기시대(목관묘집단)~삼국시대 말 또는 통일신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분묘가 축조됨.
* 출토유물: 기원전 2세기~기원후 2세기 중엽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편년되는 목관묘에서는 칠(漆)이 입혀진 현악기, 세형동검, 철검, 철모 등의 무기류, 쇠낫, 쇠도끼 등의 농공구류, 각종 무문토기류와 와질토기류, 한경(漢鏡)편(片) 등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음.
3) 고대
102년<신라 파사왕(이사금)23> 압독국 신라에 항복/106년<파사왕 27>왕이 친히 압독으로 행차하여 빈궁한 백성을 살핌/112~133년<지미왕대>읍질국(현 안강)과 지금의 장산인 압량국을 멸망시킴/146년<일성왕(이사금)13>압량군 반란에 토평하고 잔무리를 남쪽으로 옮김/218년<나해왕(이사금) 27년>백제가 신라의 장산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 공격하여 물리침/617년<진평왕39>원효(설서설薛誓幢, 혹은 설신당新幢) 출생/642년<선덕여왕11>김유신 압량주 군주에 임명/648년<진덕여왕2>김유신 압독주 도독이 됨/655<무열왕2>설총 출생(요석궁)/656<무열왕3>김유신후임으로 김인문 압독주〔압량주〕총관에 임명되어 장산성을 쌓음/661년<무열왕8>압량주〔압독주〕의 주치(州置)를 대야(현재 합천)으로 옮김/757년<경덕왕16>압독주를 장산군(獐山郡)으로 고침, 치성화〔미리〕현을 해안(현, 대구시 동촌)으로, 마진량〔미량〕현을 여량(현, 자인면의 북쪽지역, 진량면)으로, 노사화현을 자인(현, 자인면)으로 개명함.
4) 고려
940년<태조23>장산군(獐山郡)을 장산현(章山縣)으로 개명ㆍ강등됨. 하양현 설치됨/1018년<현종9>장산현, 하양현, 자인현이 경주부에 속현됨/1206년<희종2>일연(김견명) 출생/1309년<충선왕1>장산(章山)이 경산(慶山)으로 개칭되고 옥산(玉山)으로도 부르게 됨/1317년<충숙왕4>국사 일연의 고향이라 하여 복현(승격)됨/1390년<공양왕2>경산향교 창건/1391년<공양왕3>왕비 순비 노씨의 고향이라 해서 군으로 승격됨.
5) 조선
1392년<태조1>경산군이 현으로 강등됨/1562년<명종17>자인향교 창건/1580년<선조13>하양향교 창건/1592년<선조25>의병장 최문병ㆍ최대기ㆍ황경림ㆍ박의장ㆍ김후생ㆍ박경신 등이 왜적 격파/1601년<선조34>경산현, 하양현이 경주부에서 대구부에 속현됨/1607년<선조40>경산현, 하양현이 대구부에서 독립(복현)됨/1633년<인조11>자인현을 경주부에서 독립되도록 상소를 올려 진정함/1637년<인조15>자인현이 경주부에서 독립, 복현됨/1638년<인조16>경흥사 창건/1681년<숙종7>경산향교 이건/1728년<영조4>자인향교 이건/1895년<고종 32>경산현, 하양현, 자인현이 군으로 승격됨
6) 근, 현대
1914. 하양, 자인 2개 군과 신령군 남면 일부 경산군에 합병/1956.7.8 경산면이 읍으로 승격(법률 제393호)/<1966.7.1> 용성면에 육동출장소 설치(군조례 108호)/
<1973.7.1> 안심, 하양면이 읍으로 승격(대통령령 제6543호)/<1981.7.1> 안심읍, 고산면이 대구직할시 편입(법률 3424호) 2읍7면 1출장소/1986.12.1 육동출장소 폐지(군조례 1008호)/<1987.1.1> 와촌면, 경산읍, 압량면 일부 행정구역 조정(대통령령 제12007호)/1989.1.1 경산읍이 시로 승격, 경산군은 1읍 7면으로 행정구역 조정(법률 제4050호)/1995.1.1 경산시, 군 통합(법률 제4774호)/1997.11.1 진량면이 읍으로 승격(시조례 제226호)/2004.10.18 서부동 분동(서부1동, 서부2동)/2014년12월 현재 2개 읍(하양ㆍ진량), 6개면(와촌ㆍ자인ㆍ용성ㆍ남산ㆍ압량ㆍ남천), 7개동(중앙ㆍ동부ㆍ서부1동ㆍ서부2동ㆍ남부ㆍ북부ㆍ중방)으로 구성됨.
Ⅱ. 압독국과 사로국〔신라〕
1. 압독국 (押督國)〔압량국(押梁國)〕건국 및 영역
* 경산에는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에 변진소국(弁辰小國)의 하나라고 하는 압독국(또는 압량국) 나라가 있었다는 『삼국사기』기록.
* 압독국은 『삼국사기』1, 파사왕 23년 조와 27년 조의 기록, 일성왕 13년 조의 기록 등으로 보아 우리가 원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음.
* 경산 임당(압량), 자인 북사(노사화), 진량 신상리(마진량), 대구의 해안 불로동(치성화) 등 4개의 큰 세력집단들이 분포.
* 이를 통괄하는 집단이 영남대학교 앞 구릉의 임당집단(임당ㆍ조영ㆍ부적고분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음.
* 압독국 영역: 현재 경산지역 및 대구지역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이었음.
2. 압독국과 사로국〔신라〕
* 압독국이 언제 신라에 복속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4세기 후반에 신라에 통합되었다고 추정한다.
* 압독국은 어느 한 시기에 신라에 완전히 병합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일시적으로 신라에 복속되었다고 추정함. -신라가(사로) 주변의 소국을 연맹체로 흡수하는 과정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 신라가 낙동강 동쪽의 경북일대를 지배하여 통일체적 국가로 성장ㆍ발전하는, 곧 큰 연맹왕국을 완성하는 시기는 내물왕(356~402) 때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시기에 압독국이 신라에 완전 병합된 것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신라가 중앙집권적인 귀족국가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6세기 초의 일인데, 중앙집권적인 체제 이전의 약 1세기 반 동안 압독지역은 신라왕실과 압독국왕의 후예들과 제휴 하에서 통치(간접통치)되었을 것으로 보임. -이것은 경산 임당동ㆍ조영동ㆍ부적동 고분군의 조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
* 그리고 압독국이 신라에 완전히 복속된 뒤에도 이 지역은 신라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 -신라는 경산지역에 압량주〔압독주〕를 설치하고 선덕왕ㆍ진덕왕 때 삼국통일의 중추적인 인물이었던 김유신과 김인문을 군주로 파견, 장산성을 구축케 하는 등 삼국통일의 전초기지로서 이 지역을 특별히 유의함.
* 무열왕 8년(661)에 압독주를 대야(현재 합천)로 옮겼는데, 이후부터 경산지역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쇠퇴해졌다.
Ⅲ. 경주 서봉총금관과 임당동고분 금동관
* 서봉총은 발굴조사 전 130호분. 1926년 고이즈미[小泉顯夫] 등이 발굴ㆍ조사,
* 당시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방한 중 시찰ㆍ참가함. 무덤이름은 황태자 참가 기념, 스웨덴의 한문표기인 서전(瑞典)과 고분 출토 금관의 봉황(鳳凰) 모양이 장식된 데서 각 1자씩 따서 서봉총(瑞鳳冢)이라 함.
* 국립경주박물관 소장(보물 제339호. 높이 30.7㎝) 3단으로 된 출자형입식(出字形立飾)을 앞면 및 좌우의 대륜(臺輪) 위에 각각 세우고 사슴뿔 모양의 입식 2개를 대륜 뒤쪽에 세워 다른 금관과 같은 형태.
* 2개의 좁은 금대를 전후ㆍ좌우로 연결하여 중앙에서 십자형으로 교차시킴으로써 내모형(內帽形)의 골격을 만들어, 그 교차점에 금판을 오려서 만든 봉황장식 3개를 붙여 장식한 예는 다른 금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
김약수교수: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석사과정). 대구카톨릭대학에서 문화인류학. 고고학. 한국사(박사과정) 공부함
한국기와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경산지부 회장, 동국문화재연구원 원장 등 역임
(현)경산문회지킴이 회장. 경북문인협회 부회장. 경산문화원 부원장. 대구미래대학교 교수
논문: 금호강 유역의 지석묘 연구 등 30여 편 공저: 문화재조사 연구입문 등 다수 찬란한 고대 압독문화(출판예정) 2012년부터 일연선사 탄신기념 대제를 주관 주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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