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어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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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종합내과원장)
3월은 봄비랑 함께 조용히 내게로 다가왔다. 하지만 내 고향 울릉도에는 여전히 눈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넘어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하얀 입김을 내뿜는다. 얼어붙은 손발을 녹이느라 두 손을 비빌 때면, 내 곁에 와서 꼭 안아주던 고향의 어머니. 눈을 감으면 보이지만, 눈을 뜨면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
며칠전 나는 하버드 의대교수인 제롬 그루프먼이 지은 닥터스 씽킹(How doctors think ) 라는 책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의료계에 들어선 후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가지만, 여전히 나의 화두는 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이다. 의사들을 괴롭히는 ‘오진의 짐’은 현대의학의 상업적 한계와 보험체계라고 저자는 얘기하고 있다. 그중 수많은 의사의 진단과 처방을 받았지만, 15년 동안 먹은 음식을 토하다가, 마침내 죽음을 앞두게 된 한 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에 대한 극적인 치료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와 ‘신뢰’가 그 돌파구임을 보여준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의사의 진료 중 오진의 80%는 결국 환자와의 ‘소통의 실패’라는 것이다.
환자들은 의사가 자신을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보는지에 따라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진다. 여기서 오진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많은 의료과신이나 분쟁이 결국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의사의 사고의 결함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고 보면 환자에게 주는 아낌없는 사랑이 결국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비법 중의 하나가 되는 셈이다.
나는 매일 환자를 볼 때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료한다.
지금 내 앞에는 81세의 할머니가 앉아계신다. 1주일 전만 해도 허리가 ‘ㄱ’자로 구부러져 웃음을 잃고 계셨지만, 지금은 미소를 띠면서 얘기하고 있다. “자신도 20대에는 보기 드물게 훤칠한 키에 허리 28인치의 미녀였다”고, 그럴 것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면 167㎝ 정도의 보기 드물게 키가 큰 할머니였기에, 허리가 저렇게 구부러졌을 것이리라.. 통장에는 ‘5만 원’밖에 없지만, 홀로 키우는 손자가 전 재산이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할머니 이 할머니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의 사랑은 과연 어떤 방법이어야 할까?
3개월의 시한부인생을 살던 82세의 A할아버지...위암이 복강 내로 번져 항암치료마저 포기하며 치료받던 그 할아버지, 5년만 살게 해준다면 뭐든지 다하겠다던 그 할아버지는 18년째 지금 잘 살아계신다. 비록 자신의 생일은 지병으로 생략을 한지가 18년째로 접어들었지만, 매년 내 생일이면 어김없이 난초향이 가득한 화분을 보내고 있다. 오래 살려면 주치의가 필요하다며 손수 병원 쇼핑을 한 후 찾아오신 96세의 B할머니..11년 전 개업한 후 바로 찾아오신 할머니는, 오래 기다리지 못하시는 게 험이지만 ,지금은 너무 늙어서 경제적 활동도 할 수 없단다. 그리하여, 성경에 쓰인 것처럼 120살까지 살려면 돈을 아껴야 한단다. 그러니 치료비를 무조건 50프로 활인 해달라고 떼를 쓰신다. 때로는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는 육신의 아픔 때문에, 진료실은 고함소리와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상식을 넘어 죽음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잘 살아가는 사람들..나는 치료할 때마다 이들의 마음을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하던 것처럼, 쓰다듬고 보다듬어 준다.
주사를 줄때에도, 약을 쓸 때에도 이들의 마음을 skinship하듯 안아주고 ,주치의의 아낌없는 사랑을 전달한다. 그리고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최선을 다하며, 함께 기도하듯 치료한다.
누군가가 "무엇을 가장하고 싶으세요?" 라고 내게 묻는다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을 할 것이다. "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싶어요." 라고.
20여 년 전 뉴욕의 한 소아 병원에 근무할 때가 생각난다. 병원 앞에 붙어있는 슬로건은 ‘Hug Me!’(안아주세요!) 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린 많은 아픔과, 사랑의 굶주림과, 아픈 상처들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어릴 적 받은 상처로 반사회적 어른이 되어가기 전, 누군가가 그들을 안아준다면, 상처로 구멍 난 가슴을 ,누군가가 안아 준다면, 누구라도 힘들고 외로운 아이들에게, 독거노인들에게, 너에게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낫게 하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어머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차가운 이 계절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힘든 누군가를 따스한 사랑으로 포옹해주면 어떨까요? 이봄, 그저 살아있어 행복한 우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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